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더 마인호프 (문단 편집) == 평가 == 극좌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는 견해에서부터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저항한 이상주의자라는 시각까지 후세의 평가는 평가자의 사상적 진영에 따라 다양하다. 물론 바더 마인호프가 자신들 입장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간주되는 사회를 급진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의 테러리즘과 과격함, 무자비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데올로기를 떠나 쉽게 긍정할 수 없는 면모가 있다. 독일의 법률상 나치 부역 혐의와 더불어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바더 마인호프 소속 조직원들은 수배범으로 명시되어 있고 심지어 2009년에도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이 살인 혐의로 체포당한 적이 있다. 독일에는 사형 제도가 없어서 사형당한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은 없으나 대부분은 지금도 특별 격리 대상으로 분류되어 무기수로서 교도소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전향하거나[* 핵심 인사 중 호르스트 말러(Horst Mahler)는 아예 극우파로 전향하였다.] 출소한 조직원 중 일부는 독일 행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반인]]으로 생활하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등장이 [[나치 독일|나치]]의 폐해와 부모 세대에 대한 독일 전후 세대의 환멸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서독은 과거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건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랬다. 청산이 이뤄졌지만 금기시되는 지점도 있었다.] 부모 세대의 끔찍한 범죄를 안 독일 전후 세대들은 부모 세대에 대해 경멸/혐오하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정치 성향은 바더 마인호프와 반대지만 독일/오스트리아 전후 세대에 속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반 나치 단체인 [[시몬 비젠탈]] 센터에 후원한 데다 정계 진출 직전 아버지가 나치에 어떻게 부역을 했나 확인하기 위해 의뢰했을 정도였다. 아놀드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편이긴 했지만 독일/오스트리아 전후 세대가 어떻게 이 문제를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바더 마인호프는 극단적인 방책으로 그런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겠다고 나선 셈. 여기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되던 미국의 과오라든가 [[자본주의]] 문제도 끼어들면서 당시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에선 [[68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